한국 최초의 신체시 ‘해에게서 소년에게’의 일부다. 육당 최남선이 1908년 잡지 <소년> 창간호에 권두시로 발표했다. 신체시는 우리나라 신문학 운동 초기에 나타난 새로운 시 형식으로, 한국 문학사에서 차지하는 위상이 확고하다.
‘섭씨, 화씨’도 그렇게 생겨났다. 온도 단위로 우리 일상에 깊숙이 들어온 이 말은 외래 인명의 약칭에서 유래했다. 섭씨(攝氏)는 고안자인 스웨덴의 셀시우스(Celsius)의 중국 음역어 ‘섭이사(攝爾思)’에서 따왔다. 화씨(華氏) 역시 온도 단위를 생각해낸 독일 물리학자 파렌하이트(Fahrenheit)의 중국 음역어 ‘화륜해(華倫海)’를 토대로 만들었다. 마치 ‘김 씨, 이 씨’ 하고 부르듯 첫 글자를 따서 섭씨, 화씨로 칭해 굳은 말이다. 1920년대 우리 신문에서도 그 쓰임새가 확인되니 진작부터 우리말 체계에 들어와 쓰였다는 뜻이다. 비록 중국 음역어이긴 해도 이미 100여 년 전부터 우리말이 됐음을 알 수 있다.
한글은 셀시우스, 파렌하이트를 발음 그대로 옮길 수 있는 세계적으로 탁월한 표음문자다. 동시에 이를 한자음으로 섭씨, 화씨로 줄여 옮길 수 있다는 것 역시 우리말의 또 다른 언어적 경쟁력이다. 간결하면서도 실용적이다. 거기다 의미까지 살릴 수 있으니 더욱 좋다. 우리말을 풍성하게 살찌우는 장점이다.
“국명은 영길리국(英吉利國) 또는 대영국(大英國)이라고 부르고 … 국왕의 성은 위씨(威氏)이며….” 조선왕조실록은 1832년 순조대왕 때 충남 대천항 부근에 정박해 통상조약을 요구하던 서양 범선에 대해 자세히 묘사했다. ‘영길리국’은 중국에서 잉글랜드를 음역한 한자를 한국 음으로 읽은 것이다. 줄여서 지금의 ‘영국’이 됐다. 잉글랜드는 ‘영란(英蘭)’으로 음역하기도 했다. 그러니 간혹 쓰이는 영란은행은 곧 영국의 중앙은행을 가리킨다. 요즘은 한글의 장점을 살려 발음 그대로 잉글랜드은행이라고 하면 그만이다. 한자음을 활용한 음역어가 점차 사라져가는 까닭이기도 하다.
‘위 씨’는 당시의 영국왕 윌리엄 4세다. 섭씨, 화씨와 같은 수법의 말이다. 외래인명을 가리키는 약어를 만들던 이런 방식은 오늘날에도 이어진다. 2016년 5월 당시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베트남을 방문했을 때 국내 한 신문은 <‘오월동주’ 중국을 겨누다>란 제목으로 소식을 전했다. 베트남전쟁의 앙금을 씻고 화해의 악수를 한 오바마와 월남(越南: 베트남 음역어)을 ‘오월동주’ 고사성어에 빗댄 표현이었다.
동음이의어를 활용해 수사적 의미를 살린, 탁월한 조어법인 셈이다. 요즘 넘쳐나는, 단순하고 거친 인터넷 줄임말과는 격이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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